

남의나라를 쳐들어와 놓고 자랑스레 사진찍는 미국군함장교들

전멸당한 우리나라 사람들....ㅠ 참혹하네요 첫 사진이 이런 사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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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에 대한 설명: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는 조선 시대 말기에 사용된 초기 사진 장비로, 주로 외국인 사진가들이 사용했습니다. 이 카메라는 큰 나무 프레임과 벨로우즈(주름관)로 구성되어 있어 야외 촬영에 적합했으며, 풍경이나 건축물 사진을 찍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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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와 관련성: 1871년 신미양요 당시, 이탈리아 태생의 영국 사진가 펠리체 베아토(Felice Beato)가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한국에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카메라가 처음 사용된 사례로 보이며, 조선 시대의 초기 사진 기록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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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최초의 카메라 맞나요?: 연구에 따르면, 신미양요 이전에 한국에서 카메라가 사용된 기록은 거의 없으며, 베아토의 촬영이 한국에서의 첫 번째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 사용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조선 시대 최초로 사용된 카메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의 정의, 특징, 그리고 신미양요 당시의 사용 여부를 포함한 모든 세부 사항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의 정의와 특징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는 19세기 초반부터 사용된 초기 사진 장비로, 주로 야외 촬영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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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나무로 만들어진 큰 프레임과 벨로우즈(주름관)로 구성되어 있어 렌즈와 필름 사이의 거리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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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목적: 풍경, 건축물, 또는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는 데 적합하며, 특히 초기 사진가들이 장시간 노출을 요구하는 사진 작업에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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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와 무게: 대형 플레이트(보통 10x12인치)를 사용하므로 크고 무거워, 이동성이 제한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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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한계: 긴 노출 시간으로 인해 움직이는 피사체를 촬영하기 어려웠으며, 주로 정적인 장면을 담았습니다.
이러한 카메라는 19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외국인 사진가들이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활동하면서 도입되었습니다.
신미양요와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
신미양요는 1871년 미국이 한국과 무역 관계를 개척하려다 발생한 군사적 충돌로, 강화도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 사건 동안 이탈리아 태생의 영국 사진가 펠리체 베아토(Felice Beato)가 동행하여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베아토는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초기 전쟁 사진가 중 한 명으로, 그의 카메라는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로 분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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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토의 카메라: 베아토는 10x12인치 플레이트를 사용하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필드 카메라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신미양요 당시 한국의 풍경, 군사 시설, 그리고 현지인들을 촬영한 사진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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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기록: 예를 들어, 베아토는 1871년 강화도에서 촬영한 사진들로, 미국 함대의 모습과 한국군의 포트 등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최초로 카메라가 사용된 사례로 간주됩니다 (United States expedition to Korea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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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첫 사용: 연구에 따르면, 베아토 이전에 한국에서 카메라가 사용된 기록은 거의 없으며, 1883년 김용원이 첫 번째 한국인 전문 사진가로 활동하기 전까지 외국인 사진가들의 활동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신미양요 당시 베아토의 촬영이 조선 시대 최초의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 사용으로 보입니다 (Photography in Korea - Wikipedia).
조선 시대 최초의 카메라인가?
사용자가 언급한 "조선 시대 최초로 신미양요 때 촬영했던 카메라"에 대한 질문은, 베아토의 카메라가 조선 시대에 처음 사용된 카메라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음을 고려할 때, 이는 사실로 보입니다:
- 시간적 맥락: 조선 시대는 1392년부터 1897년까지이며, 신미양요는 1871년에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조선 시대에 해당합니다.
- 카메라 도입 시기: 사진술은 1839년 다게르로타이프가 발명된 이후 서구에서 발전했으며, 한국에는 1860년대부터 외국인에 의해 도입되었습니다. 베아토의 1871년 촬영은 이 시기의 초기 사례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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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사진가 이전: 김용원이 1883년에 사진 스튜디오를 열기 전까지, 한국에서의 사진 촬영은 주로 외국인 사진가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베아토의 촬영이 조선 시대 최초의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 사용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63년 이항억이 베이징에서 사진을 본 기록이 있지만, 이는 한국 내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므로, 실제 한국 땅에서의 첫 촬영은 베아토의 것으로 보입니다 (20th-century Korean photography: Search to immortalize 'spiritual truth' of era - The Korea Times).
예상치 못한 세부 사항
흥미롭게도, 베아토의 사진은 단순히 군사적 기록을 넘어 한국의 풍경과 현지인의 생활상을 담아냈으며, 이는 조선 시대 말기의 사회적, 문화적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이는 사용자가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는 세부 사항입니다.
요약연도 사건 비고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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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르로타이프 발명, 사진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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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사진술 발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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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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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사진가, 한국에 사진술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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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토 등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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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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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베아토가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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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카메라 사용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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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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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첫 한국인 전문 사진가로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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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사진술 본격화 |
결론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는 조선 시대 말기에 외국인 사진가들에 의해 사용된 초기 사진 장비로, 신미양요 당시 펠리체 베아토가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조선 시대 최초의 카메라 사용 사례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으며, 연구에 따르면 베아토의 촬영이 한국에서의 첫 번째 대형 목재 필드 카메라 사용으로 보입니다.
주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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